Page 46 - 제주미술제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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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동인 “관점” 049
오석훈: 아, 그러니까.. 제주자유미술제는 미협이 지니는 한계가 있어요. 아카데미 위주의 작품들인데 선배분들은 그런
경향성이 많거든요. 그러면서, 많은 건 좋은데, 그 영역을 주장을 해서 문제가 되는 거지요.
그것도 하면서 추상도 받아들이고 폭넓게 민중 미술까지 이렇게 받아들였으면 별 문제가 없으련만 그런 부분이
지나치게 하나의 각으로 흘렀다는 거죠.
그래서 조금 아쉬운 부분이 있어서 그런 것을 극복하는 문제가 관점에서 제주자유미술제를 기획한 겁니다.
그런 부분이 이제 대물림 되면 안 되겠다. 이런 거는 좀 바꿔서 새로운 구조의 미술 형태로 가야 되지 않겠냐 하는
합의들이 모여진 거죠.
그래서 일단은 젊은 작가들이 상당히 좋아하죠. ‘관점’에서 그걸 해 주니까. 경제적인 부담도 있는 부분인데 다 초대해서
전시를 해 주고, 그러면서 나름대로 의미를 부여하기도 하니까 그 정신을 살려서 제주미술제를 만든 겁니다.
이종후: 제가 듣기로는 13회 관점전을 하고 나서 제주민속자연사박물관에 그림이 기증된 걸로 알고 있습니다, 어떤 이유가
있었나요?
오석훈: 그 당시에 오성찬 선생님께서 거기에 연고가 계셨어요. 아주 가깝게 지내셨죠. 그래서 그런 인연도 있었지만, 그 당시
제주도에 그림을 보관할만한 적당한 곳이 단 한 군데도 없었습니다. 근데 마침 거기에 항온 항습 장치가 되어 있는
저장 공간이 있어서 저희들이 그 전시 전작을 통으로 기증을 했죠. 지금은 한 시대의 미술을 읽어볼 수 있는 계기가
될 겁니다.
이종후: 그러다가 90년대 중반에 관점 동인이 제주 미술사에서는 사라지게 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관점동인 제주미술사에 끼친 영향력은 큽니다. 구체적으로 어떤 부분일까요.
오석훈: 글쎄요. 사실 그때만 해도. 관점동인의 숫자도 많았고. 집행부 쪽에서 한 부분들이 있어서 저도 마지막 부분을 잘
모르겠어요.
그렇지만 어쨌든 좀 아쉬운 부분은 우리가 나름대로 했지만 발전적 해체과정을 거치지 않고 슬며시 사라지는 부분은
아쉽죠. 그러나 그때의 활발한 에너지는 다른단체에게 영향을 많이 줬어요. 특히, 기획하는 스타일이라던지 여성단체들을
비롯한 다른 지역 단체들에게도 그렇고. 그래서 더 젊은 분들이기도 하지만 기획하는 과정에서 저희 것들을 벤치마킹을
많이 하고 전시도 하고 그랬습니다.
이종후: 관점이 처음 생겼을 당시 제주는 문화적 변방이었고 미술계도 열악했지만, 지금은 그 당시보다 정보도 많이 공유가
되고, 동시대적으로 제주 미술이 훨씬 풍성해졌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그 당시의 어떤 시대정신, ‘관점’의
정신으로 비추어 본 제주미술의 현재는 어떤가요? 더불어, 향후 제주 미술의 방향성에 관해 조언이 있으시면 부탁
드립니다.
오석훈: 그랬죠. 당시는 문화적 변방이었죠. 하지만 지금은 감히 말씀을 드리면, 예술인들의 정보의 통합 시대 아닙니까,
그리고 세계가 하나되는 부분에서 너무나 많은 경향의 예술활동들이 이루어지는데, 되돌아보면 지나치게 외부적인
흐름에 쫓아가는 경향이 있습니다.
지금도 보면 그런데. 진짜 우리의 옷을 입는 것, 자기 정체성을 가지는 것, 그리고 사유의 폭을 우리의 생각을
지닌 것. 곧 나의 생각을 지닌 주체 예술이라고 해야 되나. 그런 쪽으로 시각을 돌리면 좋을 것 같아요.
그래서 진짜 다른 데서 볼 수 없는 예술의 향기가 많이 피어오르는 것들이 다양하게 나온다면 아마 좋을 거 같아요.
사실 제주도는 들여다보면 상당한 문화적 특성을 지니고 있거든요.
우리가 장점을 발견하지 않고 연구하지 않는 부분도 많습니다. 그래서 이런 부분은 앞으로도 같이, 공통 분모라든가
이런 걸 통해서 같이 모색하는 계기가 더 있으면 좋을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