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41 - 제주미술제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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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4 2020 제주미술제 ‘동인의 창립과 모색’
동인들과의 합동 교류전, 그 다음에 광주에 있는 역사가 70년이 넘은 에포크 동인들하고도 교류를 통해서 육지에
서도 현대미술전시를 합니다. 1986년 정도에 일본 오사카에 있는 현대미술관에 초대를 받습니다. 그래서 국제 전
시도 하는 계기가 마련되었어요. 관점이 매개체 역할을 충분히 했다고 생각을 합니다.
당시 풍토가 우리나라에서 현대미술 하는 양반들이 한강 이남에서 작업하는 양반들을 인정을 안해줬어요. 그래서
한강 이남에서 현대미술을 지향하는 작가들이 제주도 관점 동인을 중심으로 부산에 있는 혁 동인, 광주에 있는
에포크까지 세 개의 단체가 모여 1985년도에 제1회 남부현대미술제라는 것을 만들고 제주에서 대규모 전시를 하게
됩니다. 그게 지금까지 이어온 겁니다. 어떤 갈망이랄까, 신선함이랄까? 이런 것들을 보여주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런 단체가 꼭 ‘관점’만 있었던 게 아니고 우리를 모방한, 흠모하는 단체들이 울산, 대구, 구미, 대전 등에 있었죠.
아무튼 대한민국에서 우리와 같이 도시들을 순회하면서 전시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 준 남부현대미술제가
지금까지도 전시회를 열고 있습니다. 관점이 어려운 시기에 태동을 해서 지금까지도 영향력을 행사 할 수 있는 끈기가
정의심에 입각한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당시 창립했던 멤버들이 지금까지 활동하고 있어요.
이종후: 1977년도에 창립하고 1983년도에 처음 교류전을 했는데요. 도내에 한정되어 있던 것을 도외로 나가 전국적인
단위의 교류전을 하기까지 사실 짧은 기간입니다. 1977년도에서 1983년까지 짧은 기간 동안 그 성과를 이루게 된
계기가 무엇입니까?
백광익: 계기는 바로 열정입니다. 작가들의 창작에 대한 열정과 뚜렷한 목표 의식이 있었기 때문에 끈끈함이 뭉쳐져 지금
까지도 이어져 오는 겁니다. 어려운 시기에 ‘관점’을 통해 현대미술이 제주에 뿌리내림으로서 미술학도 후배들에게
‘마음대로 그릴 수 있다’는 희망을 준 거지요. 그리고 선배들이 현재까지도 열심히 해주고 있어요. 아마 도내외 합동
교류전이 제 기억으로도 제주에서 처음이 아닌가 싶어요. 그 당시 ‘관점’이 1년에 두 번씩 합동 교류전을 하고 여러
가지 획기적인 일들을 많이 했죠.
이종후: 당시 소위 빨간 딱지를 붙일 정도로 대학 내에서는 아카데믹한, 전통적 교육 구조가 굉장히 강했던 것 같아요. 지금
처럼 인터넷도 발달하지 않았고 서적들도 많이 없었을텐데 당시 현대미술의 경향들은 어디에서 접하게 되었는지
기억나십니까?
백광익: 기억납니다. 1973년도에 제주대학교 미술교육과가 태동되었지만, 그 중에 일부는 서울에서 활동한 경험이 있는
작가도 있었고 몇몇 작가들은 서울에서 큰 전시회를 한다면 비행기 타고 가서 봤습니다. 그렇게 열심히 보는 이유가
무엇이겠어요. 학교에서는 안 가르쳐 주었거든요. 우리가 흔한 이야기로 산천초목이라고 합니다. 산천초목만
그리기를 강요하는 데에서 젊은 작가들이 반기를 안 들겠어요? 당시 대학 내에서 군사정권의 파워는 얼마나 막강
했다고요. 그림이 아니라고 했어요. 구상을 하지 못해서 추상을 하는 거다. 그래서 추상을 하게 되면 졸업을 안 시키고
그랬어요. 에피소드 같이 들리겠지만 당시 교수들이 진지하게 말씀해주셨어요. 저 같은 경우도 교수님이 제 그림은
작품이 아니라고 해서 졸업을 안하겠다고 했어요. 이런 열의때문에 당시 대학생으로서는 처음으로 전국 공모전에서
대상을 받지 않았나 싶어요.
후배들이 우리를 보면서 ‘그래도 졸업은 시켜주는구나’했죠. 빨갛고 파란 물감만 찍어도 졸업이 된다는 우스갯소리가
미술과 작업실에서 나오고 그랬습니다. 당시 하고 지금은 많이 다르죠. 당시 서울에서 무슨 앵포르멜이다, 앙데팡당
이다, 다양한 시도가 있었는데 우리만 교수님 말씀 외에는 하지 말라고 은연중에 억압과 강요를 받은 거죠. 그런
상황에서 오는 슬픔 이랄까, 그런 게 있었어요.
이종후: 제주에서 ‘관점’을 계기로 현대미술이 시작이 되었고, 제주대학 미술 교육 아카데미 시스템에 많은 영향을 미쳤습
니다. 구상화 중심의 작업 풍토에서 추상을 활성화하는 데 많은 기여를 했다고 이해하면 될까요?
백광익: 네. 왜냐하면 그림이 아니라고 부정 당했던 ‘관점’ 동인 소속 작가의 그림들이 대학 교수들의 작품과 함께 전시가
됩니다. 당시 관람객들이 ‘이런 것도 그림이구나’ 하는 얘기를 심심치 않게 들었어요.
우리 ‘관점’이 태동이 되고 우리보다 더한 젊은 작가들이 또 그룹을 형성해서 활동을 하고 또 다른 모임을 만들고
그러다 보니 제주도가 점차 옛 선배들이 이야기하던 불모지가 아니라 미술의 메카로 발돋움하는 계기가 되지 않았나
싶어요.
이종후: 첫 전시를 대호다방에서 하셨다고 말씀하셨죠. 당시 분위기, 관람객의 숫자 등이 궁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