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98 - 제주미술제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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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동인 “에뜨왈” 101
이종후: 동인 전시 10회 이후부터는 한 회는 기획전을 하고, 한 회는 에뜨왈전을 하는 식으로 운영되고 있는데, 앞으로도 같은 방식을 유지
하고자 하시나요?
홍진숙: 네, 그렇게 하려고 노력은 했는데요. 기획전을 규모있게 하려고 하면 지원도 필요하지 않습니까? 예를 들어서 동인 외 작가분들
초대 하면 도록이라도 만들고 해야 하는데, 지원이 없을 때는 기획 방향을 틀어서 우리끼리 소박하게 전시 하기도 했고 지원을
받으면 가능한 기획전으로 하려고 했어요. 요즘 같은 경우에는 지원금을 받으면 워낙 복잡한 행정 절차가 있어서, 회원들 내에서
‘지원 안 받고 전시해 봅시다.’ 그런 말들도 나오고 있습니다. 가장 최근 전시 <나의 정원>(2002)은 설문대여성문화센터의 초대를
받아서 진행한 경우인데 굉장히 좋은 반향을 일으켰다고 생각합니다.
이종후: 에뜨왈은 제주에서는 다양한 방식의 전시를 시도 했는데, 제주도 외에 육지 혹은 세계 속에서 진행된 전시가 있었습니까?
홍진숙: 네, <섬 밖에서 섬을 보다>(2003)라는 전시가 있었는데요. 2003년도에 한전프라자갤러리(서울)에서 전시했어요. 에뜨왈 뿐만
아니라 다양한 제주 작가들이 참여했고 작품을 들고 비행기 탔던 기억이 납니다. 당시 날씨가 안 좋아서 비행기가 뜨냐 마냐 하면서
갔었는데, 에뜨왈 회원들이 함께 가서 좋은 추억이 되었고요.
그리고 창립 멤버 중에 미국에 거주하는 김명희 회원이 있고, 프랑스에 거주하는 정미애 회원이 있어요. 2018년도에 고경희,
김명희, 김연숙, 홍진숙 이렇게 4명이 미국 워싱턴에서 전시를 했었어요. 너무 좋은 기억으로 남았고요. 정미애 회원은 올 해
제주에 왔었는데 그 때 ‘프랑스에서도 전시를 한 번 해야 되는데…’ 했었거든요. 코로나19가 끝나면 프랑스에서도 전시할 수 있지
않을까? 라는 꿈을 갖고 있습니다. 언제 끝날 지 모르겠지만요.
이종후: 에뜨왈은 미술 단체이지만 한편으로는 제주 최초의 여성 단체이기도 합니다. 제주에서 작업하는 여성 작가로서의 자각 혹은 정체성,
앞으로 활동 방향에 대해서 말씀해 주세요.
홍진숙: 솔직히 에뜨왈을 처음 만들 때는 ‘꿈을 잃지 말자’하는 마음이었어요. 당시에만 해도 여성들이 작가로 성장하기가 어려웠어요.
결혼, 출산, 육아를 하다 보면 자기 자신의 삶이 막 달라지고, 작업실 가는 것도 힘들어요. 그런데 모임이 결성되어서 작가로서의
감각을 잃지 않도록 해 주는 역할을 했던 것 같아요. 저는 에뜨왈이 꿈을 실현 가능하게 해 주는 모임이지 않는가 생각해요.
이종후: 우리나라 미술계에서 동인의 전성기는 70, 80년대입니다. 하지만 에뜨왈은 현재까지도 지속되고 있고 굉장히 장수하고 있는 동인
인데, 그 동력이 무엇일까요?
홍진숙: 에뜨왈 7회 때 세 명이 전시를 하면서 '이제 없어지는구나.' 할 때도 있었지만 이후 좋은 후배들을 만났고, 후배들의 희생과 수고
로움으로 수많은 기획전 등 전시를 할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 우리는 1년 마다 회장과 총무가 바뀌거든요. 그럴 때마다 각각 자기
역할들은 잘 해 주시더라구요. 그리고 서로 힘을 합치고 도와서 일을 하는 분위기가 있는데 그런 것들이 오랫동안 지속할 수 있는
힘을 주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우리는 모여서 전시(일) 이야기만 하는게 아니라 애기 키우는 얘기도 했다가, 여행 얘기도 하고 이렇게 삶의 전반적인 것들을
나누거든요. 그 대화 안에서 많은 제안도 나오고, 대부분 후배들이 말해요. 선배들은 들으면서 자극을 많이 받고 그렇습니다.
이종후: 결국은 생활과 미술, 삶과 미술이 분리되지 않고 융합을 하면서 서로 돌보는 관계가 되었기 때문에 이렇게 오랫동안 지속될 수
있었던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마지막으로 에뜨왈 활동을 통해서 혹은 제주 미술계의 선배로서 제주 미술계의 현주소를 어떻게
바라보시나요?
홍진숙: 아이구. 너무 거창하게 말씀해 주시니까 어깨가 무거워지는데요. 글쎄요, 지금은 미술이라고 하는 것이 개인의 영역이지만, 혼자
가기에는 멀고 험한 길이잖아요. 결국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야 하지만 그 길에 서로 의지하고, 봐주고 하는 것이 굉장히 큰 힘이
되죠. 단체가 주는 에너지도 분명히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개인 활동과 동인 활동을 병행해서 가는 것도 좋다고 생각합니다.
윤기혁: 1994년도에도에 <여성의 삶과 현실전>에서 엄혁 선생 등 초청해서 세미나를 병행했었잖아요. 당시 조직위원회를 꾸렸었지만,
그 와중에도 에뜨왈이 주축이 되어서 진행된 것인지요?
홍진숙: 네, 대부분 에뜨왈이 주축이 되었고요. 당시 에뜨왈 중에 이경윤 씨라고 있었어요.그 친구가 기획에 관심이 많았고 섭외 등 역할을
해줘서 도움이 많이 되었죠. 지금은 에뜨왈 회원은 아니고 박물관에서 근무한다고 알고 있어요. 우리가 무언가 해보자 했을 때
우리 힘만으로 부족할 때는 주변 분들을 섭외하거나 도움을 받았죠. <제주 깃발 미술제> 할 때도 김유정 선생님 도움을 받았어요.
사람들과 함께 해서 동인 활동이 이어져 오고, 당대의 담론을 만들어냈던 것들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