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6 - 제주미술제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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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중심의 미술계에서 소외감을 느끼는 “한강 이남에서 현대미술을 지향하는 작가들”인 부산, 광주의 작가들과 더불어 1985년 남부
                           현대미술협회를 만들었다. 그의 회고에 따르면, 광주의 ‘에포크’의 최종섭, 대구의 문곤, 부산의 ‘혁’의 김동규 작가와 자신이 처음 설립
                           할 때 의기투합했다고 한다. 어떻게 보면 1970년대부터 한국미술청년작가회가 지방순회전을 하며 지역의 작가들과 교류하며 형성된
                           인맥, 그리고 지방대학의 미술과 교수들의 인맥, 그 가운데에 ‘관점’ 활동이 만든 인맥이 작용하면서 친한 작가 몇 명을 중심으로 시작
                           되었다고 할 수 있다. 부산의 김동규 작가와 친하게 지내던 백광익은 자신이 그 설득 작업의 중심에 있었다고 한다.
                           남부현대미술협회의 주요 행사는 <남부현대미술제>였다. 이 미술제를 위해 협회가 만들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첫 전시를 제주
                           에서 추진한 것은 ‘관점’의 실천 의지를 보여주기 위함이었다. 1985년 제주를 시작으로, 전주, 대전, 대구 등 여러 도시에서 해마다
                           돌아가면서 개최된 <남부현대미술제>는 말 그대로 서울 남쪽의 지역작가들을 연대하는 장이었다.
                           그 주축이 가장 최남단에 있는 제주의 작가였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제주의 ‘관점’ 동인에서 촉발된 현대미술에 대한 열정이 대한
                           해협을 건너 ‘지역작가의 한계’를 넘기 위한 조직적인 움직임으로 나타났다고 할 수 있다. 그동안 서울에서 공통의 조형이념을 가진
                           작가들의 집단화가 종종 협회의 주도권을 잡고 새로운 제도를 만드는 경우가 나타났으나 지방에서 여러 지역의 작가들이 연대하여
                           남쪽에서 북쪽으로 나아가는 일종의 변화의 바람이자, 새로운 세력화의 모색은 전례가 없던 일이었다.
                           제1회 <남부현대미술제>는 1985년 8월 제주시의 동인미술관과 한국투자신탁회관에서 열렸으며 61명이 참가했다. 2회는 1986년 부산
                           에서 열렸으며 부산시민회관 전시실에서 1백 24명이 출품한 작품이 전시되었다. 제3회 남부현대미술제는 1987년 전북 현대작가회가
                           참여하여 주축이 되어 전주의 전북예술회관에서 열었는데, 제주뿐만 아니라 광주, 전남북, 대구, 부산, 경남북, 충남북의 작가들 2백여 명이
                           참여했다. 4회는 1988년 광주의 남도예술회관에서, 5회는 1989년 대전시민회관에서 2백 10명이 참여했고, 제6회는 1990년 제주에서
                           ‘관점’ 동인 주최로 제주문예회관 전시실과, 세종미술관에서 열렸다. 이후에도 이 축제는 꾸준히 열렸는데, 1994년 10회 전시는 대전의
                           대전시민회관과 대전문화원 화랑에서 열렸으며 전국에서 온 3백여 명의 작가가 참여했다.
                           이 축제는 처음부터 ‘서울 중심에서 벗어나 지방 특유의 고유성을 강조’하기 위해 지방의 작가들을 모은 장을 지향했고, ‘미술계의 중앙
                           집중화에 반대’하는 작가들의 공감대를 이끄는데 성공했다. 각 지역의 주최하는 작가 단체가 예산을 확보하여 행사를 치렀으며, 그 취지에
                           공감하는 작가들은 해마다 늘어 한 행사당 2-3백 명이 참여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후 포천 등 수도권까지 진출했으며 2000년대 들어서
                           해외의 작가들이 요청으로 텐진, 베이징에서 열리며 명칭에 ‘국제’를 붙이게 된다. 미국, 일본, 중국, 러시아, 독일, 프랑스 등 해외의 작가
                           들이 참여하게 되는데 2019년 부산에서 열린 35회는 ‘대한민국 남부국제현대미술제’라는 명칭으로 2백여 명의 작가가 참여하였다고
                           한다. 그동안 제주에서는 1985년, 1990년, 그리고 2002년 등 여러 번 열렸다.
                           정리하자면 보수적인 제주의 화단에 저항한 청년 정신으로 태동된 ‘관조’의 작가들은 기성세대와 다른 예술의 길을 갔다는 점에서
                           근대예술의 기본인 비판적 태도를 보여준 사례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그러한 도전 정신을 타지역의 작가들과 공유하며 서울 중심의
                           중앙 미술계의 권력화에 저항하고, 각 지방을 아우르는 대규모 집단화를 모색했다는 점은 역사에 기록될 만하다. 제주의 작가들이 모인
                           ‘관점’에서 출발한 현대미술에 대한 열망은 한반도 남쪽의 ‘남부현대미술제’로 성장하여 작은 들불처럼 한국의 지방으로 확산되어 지방의
                           작가들이 한자리에 모이는 미술제로 성장했고, 지금까지도 유지되는 대규모 행사가 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전시는 35년 이상 지속되면서 처음 창립에 참여했던 작가들도 제도와 함께 연륜이 깊어가고 전시형식도, 전시작품도 과거
                           처럼 새로움을 유지하지 못하고 있다.




                           5. 마치며


                           2000년대 이후 제주 미술계는 전례 없는 이주민 증가와 귀향 인구의 증가로 문화예술의 전성기를 맞이했다. 2001년 제주문화예술
                           재단이 출범하고, 2009년 제주도립미술관이 설립되어 기본적인 제도와 공간 구축을 하기 시작했고, 저지리예술인마을, 크고 작은
                           갤러리와 문화공간의 등장, 대기업을 비롯한 민간투자를 받은 미술관, 레지던시, 전시 등은 가파도부터 제주시 원도심까지 제주미술
                           계의 내용을 풍성하게 만들었다.
                           그에 따라 그동안 작가들의 구심점 역할을 하던 제주미협과 탐라미술인협회 등 지역의 미술 단체들도 이런 변화된 시대에 맞게 역할과
                           기능을 재정비하고 있다. <4·3미술제>가 기획자를 두고 전시를 준비하기 시작했고 <제주미술제> 역시 기획자를 중심으로 행사를 치르기
                           시작했다. 25회 <제주미술제>가 ‘제주동인’을 주제로 내걸고 도내의 작가 그룹과 단체를 소개하는 장을 만든 것도 그런 맥락에서 나왔다.
                           그러나 이미 한국미술계는 기획자, 평론가, 비엔날레, 그리고 현대미술을 지향하는 미술관, 전시공간 등이 주도하고 있다. 단체보다
                           개인의 재능에 기대는 이러한 시대에 제주의 ‘현대미술’도 변화가 필요하다. 그래서 이번 전시는 과거를 돌아보고 정리해서 미래를
                           모색해야 할 시점에 시의적절한 주제이다. 앞으로 어떤 미래를 만들어 갈 것인가는 계속 고민해야 할 과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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