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54 - 제주미술제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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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동인 “산남회” 157
외연을 넓히는 과정을 쭉 거쳐 갔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 중 기억에 남는 전시나 서로 교류를 했던 인상적인 전시가 있으신지요.
김혜숙: 서귀포 지역에서는 대표적인, 지금까지도 유일무이한 단체예요. 많은 역할도 했었죠. 실험적인 작품도 많았지만, 전시 방법에 대해서도
실험을 했던 것 같아요. 제가 가장 인상깊게 생각하는 전시는 <10회 산남전>(2002)이예요. 그림에 얽힌 이야기라는 부제의 전시였는데요,
저는 이 전시를 산남전 전시 중에서 우리가 기억할 만한 전시라고 생각합니다. 자신의 작품, 작품이 나오게 된 배경, 자신의 줄기와 뿌리
그런 과정과 주위의 모든 것들을 이야기로 풀어 나가는 거예요.
저 같은 경우 ‘할머니의 무덤가에서’ 시리즈를 하고 있었을 때인데 오랫동안 못 뵈었던 할머니가 돌아가셔서 처음으로 합장하는 걸 봤어요.
꽃상여를 매고 산소에 올라가서 할아버지 무덤을 파서 그 옆에 할머니의 뼈를 심는 걸 보고 너무 충격을 받았어요. 할머니께서 돌아가시기
전에는 원수 같은 남편이라고 했지만, 그래도 마지막에는 할아버지랑 같이 가고 싶다고 하셔서 그 소원을 들어드린 건데, 할머니 할아버지가
나란히 누워 있는 그 묘 안에 청실 홍실을 예쁘게 묶어서 놨어요. 그래서 ‘할머니의 무덤가에서’ 작품을 보면 청실 홍실이 항상 들어가 있고,
그런 이야기를 무덤덤하게 써 내려갔죠. 이 책 형식으로 되어있는 작품들을 관객들이 봤을 때 작품을 훨씬 더 이해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저 역시도 책을 보면서 ‘이 작가는 당시 이런 마음이었구나’, ‘이런 배경을 통해 작품이 나왔구나’하고 많은 걸 좀 더 알 수 있었고요.
참 잘 했었던, 훌륭한 전시가 아니었나 생각을 하고 이 전시를 가장 소중하게 생각합니다.
이종후: 서귀포 사람들한테는 산남인이라는 게 서귀포인으로서의 자각이라고 생각합니다. 작가적역량이 제주 보편적인 것에 대한 얘기를 끄집어 내고
있다고 보여지는데요. 10회의 전시 역시 산남회 회원들이 주가 되어 진행이 되었는데, 그 이후로 서귀포가 많은 변화를 거쳤지 않습니까?
문화의 거리도 생겨나고 여러가지 페스티벌이 많이 생겨났는데 이런 변화 속에서 산남회가 개입되었거나 영향을 준 부분도 있습니까?
김혜숙: 예, 그렇죠. 서귀포 지역의 대표적인 작가들의 모임이었으니까요. 그런데 작가들이 산남전만 한 게 아니라 다른 그룹에도 중복으로 소속되어
있어요. 두 세 개의 그룹에 소속되어서 작품 활동을 했을 정도로 아주 열의를 가지고 있었던 작가들이었고, 서귀포에 대한 인식의 뿌리가
깊었고 애정이 넘쳤죠. 그래서 어떻게 하면 서귀포 예술인들을 더 결합시킬 수 있을까 그리고 문화적인 요소를 충족시켜 줄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이 많이 있었던 거 같아요. 예를 들어 96년도에 했었던 <서귀포 미술 동인전>이 있어요. 제35회 한라문화제에서 했던 전시인데,
여기서 주목할 만한 것은 주관이 산남회라는 겁니다. 그만큼 산남회가 서귀포 내에서는 영향력을 가지고 회원들뿐만이 아니라 어르신들도
모시고 더 폭을 넓혀서 전시를 기획했었던 적이 있었죠.
이종후: 지금 서귀포에는 한국 미협 서귀포 지부가 있습니다. 처음 산남회 활동을 하던 때에는 서귀포 지부가 없었던 것으로 아는데요. 산남회
활동을 통해서 동인에서 협회로 확장되는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한 것 같아요. 산남회가 서귀포 미술 지부로 결성되는 과정에서 어떤 역할을
했는지 궁금합니다.
김혜숙: 그 당시 모든 전시에 대한 관심이 제주시 쪽에 많이 있었지요. 물론 제주시에 한국미술협회 제주지회가 있었고 그것을 발판으로 한 여러 가지
전시들이 아주 많이 형성되어 있었던 시절이었습니다. 그리고 서귀포에서 전시 개최는 산남전, 한라문화제 그리고 개인전 등에 불과 했었단
말이죠. 그래서 좀 더 결속력을 다질 수 있는 한국미술협회 서귀포지부를 만들면 어떠냐는 의견이 나왔고 많은 분들이 동의를 했었습니다.
주축으로 산남회가 큰 역할을 했었죠. 그 당시에 박성배 회원이 초대 회장을 맡게 되어서, 산남회가 서귀포 미술협회로 넘어 간 게 아니냐는
추측도 있어요. 물론 틀린 말은 아니지만 산남회 활동은 별개로도 계속 이어졌습니다.
이종후: 조심스러운 질문입니다. 산남회 창립 당시 서귀포시는 굉장히 좋은 환경을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문화적인 인프라가 제주시에 비하면
부족했던 것 같습니다. 28여년이 지난 지금, 산남회를 통해서 그런 부분들이 극복되었다고 생각하십니까?
김혜숙: 예전에 비하면 많이 좋아졌다고 봐야 되겠죠. 서귀포예술의전당, 기당미술관이 있고 이중섭 창작 갤러리도 있고 그렇긴 해요. 그렇지만
아직까지 부족함이 있어요. 작가들한테는. 여러가지 부족한 점들을 느끼면서 쓰라림도 없지 않아 있어요. '아, 이거 밖에 해 줄 수 없었나?’라는
아쉬움이라든가. 이중섭 갤러리도 물론 제 역할을 잘 하고 있지만 협소함도 없지 않아 있죠. 공공미술관들도 조금 더 배려가 있어야 되지
않을까, 좀 더 체계적인 지원이 있어야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듭니다. 서귀포에도 다음 세대들이 많이 있는데 그룹을 만들었다거나 이런
소식이 없고, 서귀포 미술협회에 가입하는 단계도 아니고요. 그래서 우리 다음 세대를 위한 모임이 있으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이종후: 앞으로 산남회는 어떤 방향으로 갔으면 하십니까?
김혜숙: 지금 대부분 동인들이 정체되고 있는 시기인 것 같아요. 산남회도 2015년도 28회 전시를 마지막으로 쉬고 있는 시간이라고 봐요. 사실은
재정비가 필요한 거 같아요. 누군가가 자각을 갖고 다시 새롭게 정리를 하고요. 산남의 유일한 동인이기 때문에 그 정체성은 이어져야
되겠지만, 젊은 회원 영입이 필요할 거 같고 또 육지에서 이주해오는 미술인들이 참 많아요. 그 분들하고 화합해서 더불어 나가는 것도 서로
작품 활동에 있어 도움이 될 거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