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55 - 제주미술제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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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8 2020 제주미술제 ‘동인의 창립과 모색’
INTERVIEW
오승익 작가
일시 2020. 09. 19 장소 델문도갤러리 대담자 이종후, 윤기혁
이종후: 산남회의 창립멤버이기도 하시고, 현재도 이끌어 가고 있는 입장이시죠. 산남회가 어떤 계기로 창립이 되었는지 창립
당시 분위기, 모임의 이름은 어떤 계기로 지으셨는지 얘기를 해주세요. 그리고 처음 전시를 했을 때 당시의 분위기에
대해서 설명해 주십시오.
오승익: 산남회가 만들어질 당시 서귀포 미술에 대해 서귀포 시민들이 받아들이는 정도를 먼저 얘기하겠습니다. 지금도
서귀포는 예술인들이 왔을 때 살고 싶은 예술의 도시라고 하지요. 옛날에도 그랬어요. 분위기 자체가 좋고 이중섭을
대표로 작가들이 오면 진짜 예술이 샘솟는 데라고 할 정도입니다. 말하자면, 서귀포 시민들이 미술이나 예술에 대한
개념 꼭 미술 뿐만 아니라 연극, 영화까지도 굉장히 넓게 봐서 분위기가 굉장히 좋았어요. 제주시보다도 훨씬 더.
그래서 지역성으로 보면 광주하고 비슷할 정도로 애향의 도시인데 아쉬운 점은 그 당시에 미술 흐름이 그룹 보다는
개인 역량에 따라서, 지역의 선생님이 문하생을 키우는 식이었어요. 우리가 아는 고영우 선생님, 소암 현중화 선생님
이런 식으로 뿌리가 내려졌고 그분들이 제주 대표적인 작가들이 됐는데, 문제는 젊은 사람들이 없는 거예요. 그리고
미술대학 진학을 준비하거나 미술에 관련된 것은 소규모 미술 학원에서 진행되는데, 운영도 미술을 전공한 사람이
아닌 그림이 좋아서 직업이 되는 경우가 많았어요.
저는 제주시에 거주하지만 근무지가 산남, 서귀포를 왔다 갔다 했었어요. 서귀포 올 때마다 이렇게 좋은데 왜 이렇게
안 될까, 미술계 선배들을 만나면 분위기도 좋고 오붓하고 가족적이고 또 그림들도 굉장히 서정적인데 왜 단체들은
없을까? 생각이 들었죠. 젊은 세대가 뭔가 시도하고자 하면 선생님들 시각에서 ‘뭐하는 짓이냐’ 하는 분위기가 있었어요.
새로운 세력이 형성되니까. 그 다음에 전문적이지 않은 작가들을 아우르려고 했더니 프로리즘하고 아마추어리즘이
충돌해서 문제가 되고요. 그러니까 사람들이 말을 못 하는 거예요, 아무도. 또 중간에 계신 분들도 결정을 못 하는 거죠.
그래서 서귀포 출신이 아닌 제3의 인물이었던 제가 과감하게 이건 아니다, 10년 후를 보고 20년 후를 보자, 한 거죠.
이런 분위기 속에서 서귀포를 대표하는, 좋은 작가가 나올 수 있겠느냐 한 거죠. 그러면 젊은 층에서 인식을 하자,
전문성을 기르자 해서 당시 미대 나오신 분, 대학 다니는 사람으로 회원을 구성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