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24 - 제주미술제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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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동인 “보롬코지” 127
그런데 83년도에 탄압을 받아 강제적으로 모임이 깨집니다. 자기가 태어난 탯줄을 태워서 땅에 묻은 땅이라는 내용의
제목 <태손땅>(1983)이라는 공연을 했는데, 수눌음의 창립 공연이었던 <땅풀이>와 마찬가지로 제주도의 무자비한
개발 문제를 다뤘어요. 탄압을 받아서 해체가 됩니다. 강제 해산이 됩니다. 그래서 83년도에 제주대학교 최초의 데모,
학내 시위가 일어납니다. 80년 이후에 전두환 정권이 들어서면서 분위기가 살벌했고, 그래서 조용했는데 83년 10월
마지막 날, 제가 그자리에 있었어요. 학내 집회가 벌어졌는데 대책회의에서 그 배후를 수눌음으로 찍어요. 대학
총장부터 대책회의에 계셨던 윗분들이 수눌음이 가장 불온한 단체라고 해서 공연도 못하게 하고, 해산을 시켜버려요.
당시 공연은 사전 신고제 였거든요, 대본은 다 빨간 줄 그어져 있고…. 그래서 수눌음이 두 갈래로 나뉘어 두 팀으로
탄생이 돼요. 그게 한올레하고 한라산인가, 그랬다가 다시 만들어진게 놀이패 한라산이였어요.
미술 쪽에는 우리 보롬코지가 있었고, 노래 쪽에는 숨비소리 이런 팀들이 생겨나면서 각종 연희, 전시, 공연 단체들
이 합쳐서 전국적인 분위기와 함께 민중예술인총연합회, 민예총이 탄생한 거죠. 그게 90년대 중반인거죠. 민미협
(민족미술인협회) 탄생도 비슷한 시기, 90년대 중반으로 가는 거죠. 보롬코지 활동은 80년대 말 90년대 초까지
활동한거고, 발전적 해체이기도 하지만 개인적으로 군대 문제도 있고 취업 문제도 있고 하면서 자연적으로 해체가
된 거죠. 교사 발령을 받고 저는 강원도에 왔고 부양식 작가는 부산으로, 허순보 작가는 경기도로 그렇게 다들 육지로
가게 되었고요. 제주에 남아있는 분들도 대부분 미술교육과 출신들이니까 대부분 교사 직장 생활을 했어요. 그래서
자연스럽게 해체가 되었는데 다시 또 모여서 탐미협을 만드는 기반이 된거죠.
이종후: 가정인데요. 만약, 탐미협과 별도로 보롬코지가 지금까지 존재했더라면 어떤 모습일까요? 탐미협은 더 조직화된
미술 협회이고 규모 있는 단체로서의 성격이 강해졌을 거예요. 보롬코지가 동인적 태도로서 갖고 있는 전투성이나
여러가지 조형적 실험들이 계속 되어 왔다면 어떨까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김수범: 물론, 제주도 미술사에서는 보롬코지가 이념을 내세운 최초의 단체일수도 있습니다. 관점 동인이 제일 크고 위치도
있었고, 이전의 구상을 넘어 추상까지도 포함하는 그야말로 현대미술로서의 개념을 완성한 미술 단체였죠. 보롬코지는
하나의 이념 아래 모인 단체지 않습니까? 그런 단체가 실은 드물죠. 친목을 중심으로 소규모로 모인 미술 활동이
대부분인데, 그래서 보롬코지가 의미가 있습니다. 그때만 해도 시대적 분위기가 조직을 키워서, 세를 키워서, 더 많이
알려서 세상을 바꿔보자는 마음이 강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해체 되고 발전적으로 다시 뭉치고 이런 흐름이 있는 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 이런 생각이 있어요. 예를 들어 애기구덕 있잖아요. 보롬코지 전에 애기구덕이라던가, 그리고 4인전
했던 친구들하고는 왕년의 타이틀로 옛날 그림 남아있으니깐 그것 하고 지금하는 작업을 같이 전시했으면 좋겠는데,
그게 쉽지 않더만요. 나이가 들어서 각자 개성도 생기고 서로 속박하고 싶어 하지 않은 것 같아요. 규정되는 걸
원치 않고, 나이가 더 들어서 할아버지 할머니되면 그때 가능할지….
이종후: 끝으로, 제주미술사를 보면 70~80년대를 동인의 시대라고 볼 수 있습니다. 삼삼오오 모여서 방법론도 연구하고
새로운 흐름을 만들기도 하고요. 그러다가, 90년대 이후로 협회로 발전을 합니다. 그러면서 계속 협회가 커지고
거대해지는데. 오히려 최근에는 작가들은 점점 개별화되는 것 같아요. 어떻게 보면 동인이 와해되는 시기인 것
같고요. 그렇다면 현시점에서도 동인, 혹은 예술가 집단이 유효한가라는 질문을 해 봅니다.
김수범: 특히 젊은 작가분들이 계속 해나가면 좋겠어요. 아니, 나이에 상관없이 생애 주기 별로 필요한 것 같아요. 혼자서
하기 부담스러운 부분들이 있고, 서로 힘이 되어 주면 좋을 것 같아요. 물론 혼자서도 다 할 수 있고, 자기 자신의
길을 닦아야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로 작업을 보여 주면서 자극받는 게 필요하고 그래서 동인 활동이 활성화
되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