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29 - 제주미술제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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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2  2020 제주미술제  ‘동인의 창립과 모색’




            INTERVIEW






            부양식 작가





            일시  2020. 09. 11     장소  부양식 작가 작업실     대담자  이종후, 윤기혁

































            이종후:   보롬코지 이름이 어떻게 해서 생긴 건지 먼저 말씀해 주세요.


            부양식:    1984년에 오름이라는 판화 동인을 만들었어요. 판화라는 매체로 작업을 하다가 그때 당시에 5·18광주민주항쟁의
                    여파도 있었고, 서울에서는 이미 민중미술이 태동되었거든요. 그래서 우리가 작가의 입장에서만이 아니라 좀 더
                    활동가의 입장으로 가보자, 우리도 민주화를 위해서 기여를 하자, 이런 얘기들이 오가면서 공감을 했죠. 제주도도
                    그렇고 한국적인 상황도 그렇고 가장 앞에 있으면서 바람을 막고 있으면 그곳이 최전선 아니겠느냐, 그런 의미에서
                    보름코지를 하자, 그랬더니 만장일치로 보름코지라는 명칭이 생겼어요.
                      보름코지 활동을 하면서 나한테는 선배 두 사람이 있었고, 동료 그리고 후배들까지 여섯 명 정도 모였던 것 같아요.
                    제가 보름코지라는 이름으로 활동한 것은 처음부터 끝까지예요. 군대 가는 사람, 취직한 사람 들쭉날쭉 했었거든요.
                    그러다 보니 팀을 이끄는 역할을 제가 할 수 밖에 없었던 것 같아요. 우선 미술 운동의 의미, 즉 미술의 민주화를 하고자
                    했는데, 미술에 한국의 현실을 담아서 많은 사람들과 공유하자는 취지로 작품 활동을 했죠. 그리고 판화라는 매체의
                    특성상 생활 용품들을 만들어낼 수 있잖아요. 손수건을 만든다든지, 티셔츠를 만든다든지 히트작이 있어요. 우리가
                    판화 카드를 만들어서 엄청나게 팔았어요. 그때 당시에는 수익금으로 팀을 운영할 수 있을 정도로 사람들의 호응을
                    얻어냈고 발전적으로 이어졌죠.
                      그 다음 다른 문화 단체들하고 연대 활동들을 많이 했어요. 4·3연구소 만들어질 때부터 간판이라든지 플래카드 제작을
                    계속 지원했고, 놀이패 한라산 공연 포스터를 만들어 준다던지, 『이제서야 말햄수다』 책 표지 판화 작업도 했고 그렇게
                    당시에는 제주도 문화예술단체들하고 연결고리가 상당히 많았죠. 그리고 이제 또 핵심적인 사업이 뭐였냐면, 판화
                    교실을 운영했어요. 일반 사람들에게도 판화라는 매체를 통해 미술을 던져주자, 같이 하자 했죠. 서양에 그리스와
                    르네상스가 있다면 우리나라에는 실학과 조선 후기 민화의 시대가 있었다고 봐요. 그 민화의 시대를 판화를 통해서
                    재현해보자는 생각이 들었던 거죠. 그래서 판화 교실을 하면서 사람들이 엄청 모여들었어요.
                      그런데 지금 와서 생각하니까, 전설이라고 해도 될 만한 일들이 뭐냐 하면 이 사람들이 전부 다 우리의 서포터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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